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풀무원농장을 풀무로 삼아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확산하는 ‘풀무질’에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원경선 원장님과 '풀무원'
1981년 서울 압구정동.
‘풀무원농장무공해농장물직판장’이라는 작은 채소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원경선 원장님의 풀무원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작물의 내재된 가치를 상품화한 가게였습니다.
‘풀무원’이 브랜드로 태어났습니다.

풀무원이 ‘가게’에서 ‘회사’로 발돋움하는 초기 과정에서, 원장님은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보급해야 한다고 늘 당부했습니다.
풀무원의 브랜드 정신은 그렇게 정착되었습니다.

원경선 원장님의 이 당부를 임직원들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무원은 원장님의 강의를 정기적으로 마련했습니다. 또한 풀무원농장 바깥에서 펼치는 원장님의 사회적 기여, 곧 기아 구제, 환경 친화적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동참해 왔습니다.
풀무원 브랜드 속에 함축된 원장님의 정신은, 풀무원의 성장과 함께 더 깊이, 더 멀리, 더 널리 확산될 것입니다.

풀무원 농장 원경선 원장님의 생애 (1914 – 2013)

  • 1914 / 1살

    4월 17일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번동리 황촌에서 아버지 원낙범과 어머니 김승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 1924 / 11살

    황해도 수안군으로 이사하여 감리교회 학교에 다니며 기독교에 입문했다

  • 1927 / 14살

    교회 학교가 문을 닫자 수안공립보통학교로 편입했다.

  • 1929 / 16살

    보통학교에서 장학금 10원을 주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 1930 / 17살

    보통학교를 졸업하며 장학금에서 쓰고 남은 돈 1원 50전을 학교에 돌려주었다.
    이런 올곧은 태도 덕분에 청년 대상 영농자금을 받아 농사를 지었다.

  • 1935 / 22살

    신학교에 진학하여 전도사가 되려고 서울로 왔다.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노동을 하느라 신학교에는 못갔으나 한평생을 ‘전도하는 농부’로 살았다.

  • 1938 / 25살

    다니던 기독 동신회 교회에서 배화여고를 졸업한 신여성 지명희를 만나 혼인했다.

  • 1939 / 26살

    중국 북경으로 이주했다. 부부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인 ‘지원인서사(地元印書社)’를 운영했다.

  • 1946 / 33살

    5월에 북경에서 귀국했다. 건축회사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토건회사를 차렸다.
    뇌물로 공사를 따내야 하는 토건업에 회의를 느껴 사업을 정리했다.

  • 1949 / 36살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직 이름은 없었으나 풀무원 농장의 시작이었다.

  • 1953 / 40살

    전쟁 고아들, 노인들이 도당리의 농장에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풀무원농장에 풀무원공동체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 1954 / 41살

    뒷날 홀트아동복지회를 세운 해리 홀트(Harry Holt)를 처음 만났다.

  • 1955 / 42살

    정식으로 풀무원공동체를 설립하고, 농장도 풀무원농장으로 명명했다.

  • 1956 / 43살

    거창고등학교 설립자인 전영창 선생의 부탁으로 거창고등학교 이사직을 맡았다.

  • 1961 / 48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이 해에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 1974 / 61살

    일본 애농회의 잡지 <애농>에서 고다니 준이치(小各純一)의 글을 읽고 유기농을 알게 되었다.
    아오야마의 애농회로 그를 찾아가 유기농에 관해 깊은 의견을 교환했다.

  • 1975 / 62살

    원장님의 초대로 여름에 고다니 선생이 농장을 방문하여 유기농법을 강의했다.

  • 1976 / 63살

    풀무원농장에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 농민단체 ‘정농회’가 결성되었다.
    4월에 경기도 양주의 새 땅으로 농장을 옮겼다. 한국 최초의 유기농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풀무원농장을 법인화 하여 ‘한삶회’를 설립하고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했다.

  • 1981 / 68살

    5월 12일 아들 원혜영이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에 ‘풀무원농장무공해농산물직판장’을 열고 풀무원농장과 정농회 농부들이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팔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유기농 가게였으며, 식품기업 풀무원(이하’풀무원’)의 모태였다.

  • 1984 / 71살

    5월에 풀무원식품이 설립되었다.
    원장님의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을 브랜드 정신으로 이어받을 풀무원의 창사였다.

  • 1987 / 74살

    일본의 국제기아대책기구 행사에 참석하여 세계 기아 문제에 눈뜨게 되었다.
    스위스의 기아대책 본부에 한국 지부를 세우겠다는 뜻을 전하고 창설준비위원장이 되어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풀무원 임직원과 헬스어드바이저들이 이 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풀무원 고문으로 취임했다.

  • 1992 / 79살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 글로벌포럼에서 한국 대표로 발표했다.
    지구 환경의 미래를 걱정하며 설립된 환경개발센터의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제2회 ‘녹색인상’을 수상했다.

  • 1995 / 82살

    세계환경의 날인 6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에서, 유기농의 실천으로 지구 환경에 이바지한 공로로 유엔환경계획(UNEP)의 ‘글로벌500’상을 수상했다.

  • 1998 / 85살

    제13회 ‘인간상록수’에 선정되었다.
    제12회 ‘인촌상’을 수상했다.

  • 2004 / 91살

    양주의 풀무원농장을 정리하고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로 이사하여 공동체 평화원을 열었다. 거기서 가까운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 안에 마련된 살림집(현재의 기념관)과 공동체를 오가며 만년을 보냈다.

  • 2008 / 95살

    제10회 ‘환경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 2009 / 96살

    2월 18일 72년 동안 부부이자 동지로 해로한 지명희 여사가 별세했다.

  • 2013 / 100살

    1월 8일 100살을 일기로 별세했다.